함양향교 제4회 전국 한시백일장 운영 요강
(주최: 함양군청. 주관: 함양향교. 대회장: 함양향교 전교)
함양향교에서는 2025년도 전국한시백일장을 다음과 같이 개최하오니 뜻있는 문사의 옥장(玉章)을 기대합니다.
1. 의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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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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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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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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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가 안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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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청서 접수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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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작시 시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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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심사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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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심사방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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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수상자 발표 및 시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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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시상 내역 |
구분 | 인원 | 시상금 | 총 액 | 비 고 | |
1 | 장원 | 2 | 1,000,000 | 2,0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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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차상(금상) | 4 | 700,000 | 2,800,000 | |
3 | 차하(은상) | 8 | 500,000 | 4,000,000 | |
4 | 참방(동상) | 16 | 200,000 | 3,200,000 | |
5 | 가작 | 30 | 100,000 | 3,000,000 | |
6 | 학생부 | 15 | 100,000 | 1,500,000 | |
계 | 75 | 16,500,000 |
* 등위에 따라 경상남도도지사, 함양군수, 함양향교 전교 상을 안배하며, 특별상으로는 성균관장, 양씨 문중회장상을 수여한다.
11. 협조 사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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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백리(淸白吏) 양관(梁灌) 선생 | |
청백리 양관(梁灌 1437~1507) 선생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옥지(沃之)이며, 호는 일로당(逸老堂)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관직으로 돈녕부(敦寧)의 지돈녕(知敦寧)을 지냈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녹선(錄選)되었다. 중종(中宗) 2년(정묘 丁卯)에 세상을 떠났다. 공(公)은 내외(內外)로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얼음과 쑥(氷蘖)처럼 강직하게 자신을 단련하였다. 덕천(德川)에서 귀향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내 마음 푸른 하늘과 같아서, 추호(秋毫)의 사사로움도 본성을 가리지 않네. 짐을 점검하니 부끄러움 남아 있건만, 베 이불조차 덕천의 전답에서 나왔구나.” 어사(御史)가 그의 청렴하고 검소한 삶을 듣고, 나루터에서 그의 짐을 조사해 본 후 크게 감탄하여 이를 보고하였다. 이에 특별히 초승(超陞)되어 통정(通政)의 직위에 올랐다. 의주목사(義州牧)로 부임하여, 당시 그의 정치는 맑은 물과 같아, 관리와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며 노래하였다. 어사 이천영(李天英)이 그의 청백함을 보고하며, 이에 특별히 가선(嘉善)의 직위를 더하였다. 장흥(長興)에서 돌아올 때 그의 짐은 적막하여, 한 척의 배에 실린 것은 《소학(小學)》, 이백과 두보의 시집, 거문고와 피리 하나, 학 그림과 활 하나뿐이었다. 마침 금의위(錦衣衛)의 관리가 함께 타고 있었는데, 그의 청렴함을 살펴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이에 성군이 가상히 여겨 특별히 청백한 관리로 기록하고, 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궁궐 벽에 걸도록 명하였다. 이후 수령(守令)들이 조정에서 사직할 때마다 반드시 그 그림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양관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이다. 너희도 그를 본받도록 하라.” 이후 여러 차례 중임을 맡게 되었으나, 그는 늙음을 이유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한 정사를 짓고, 꽃과 대나무를 심어 "일로당(逸老堂)"이라 편액하였다.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훈계하였다. “집이 가난하건만 재물을 무엇 하러 나누랴! 청백한 삶이면 후손에게 맡길 만하도다. 방자(龐子)가 남긴 평안함을 내가 먼저 얻었으니, 간절히 당부하니 내 말을 저버리지 말라.” 공(公)은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 엄정하며, 몸가짐을 단정하고 청렴하였다. 비록 문과를 버리고 무과에 뜻을 두었으나, 박학다식하고 도(道)를 좋아하며, 문장 또한 은근한 정취가 있었다. 세 조정(三朝)을 섬기는 동안,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한 삶을 지키니, 성군(聖君)께서 당대의 사관(史官)들에게 그를 칭송하게 하고, 후세에 빛을 남기게 하였다. 아, 참으로 영광스럽고 성대한 일이로다!
* 출처: 嶺南人物考 卷八/咸陽, 咸陽郡史 | |
함양향교 한시 백일장, 한시의 대중화를 향한 새로운 시도 | |
함양향교(전교 정문상)의 백일장은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한다.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는 ‘우함양(右咸陽)’에서 전통 형식과 더불어 우리 율시를 창안하여 한시의 대중화를 모색하는 노력 자체가 선각(先覺)의 길이라 감회가 새롭다. 아직 우리 한시 구성법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신춘마다 유행하는 대련을 통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踏青賞花享春光 푸름을 밟고 꽃 감상하며 봄빛을 누리고 倒紅隨溪步柳路 붉음을 비추는 시내 따라 버들 길을 걷네. 一口春餠春一口 한입 문 봄 떡은 한입의 봄을 문 것이요 三杯露酒三杯露 석 잔의 술은 석 잔의 이슬을 마신 것이라네.
제1구와 3구는 널리 알려진 표현으로 서로 연관성이 없지만, 그 표현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제2구와 4구를 대련으로 맞추었다. 그러나 기존의 한시 구성법에 따르면 평측(平仄)과 압운(押韻)이 맞지 않아 이러한 표현이 불가능하다. 이를 해결하고, 한시 본연의 정신인 “시는 뜻을 표현한 것(詩言志)”에 충실하기 위해 새로운 구성법을 창안했다. 제2구의 압운이 ‘路’이므로, 제4구에는 한글 모음을 기준으로 ‘고, 노, 도, 로, 모, 보…’ 등의 글자 중에서 ‘露’를 선택하여 안배했다. 홀수 구의 끝 글자는 光과 口처럼 ㅗ+ㅇ 계열의 소리가 아닌 글자는 모두 배치할 수 있다. 기존의 압운법은 운자를 따로 외워야 하지만, 〈대한신운(大韓新韻)〉은 한국어의 모음 체계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압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외울 필요가 없다. 또한, 홀수 구의 끝 글자는 압운한 발음이 나오지 않는 글자로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 표현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시언지(詩言志)’의 실현이 더욱 쉬워진다. 이러한 원칙은 15권의 문집과 5천여 수의 작품을 통해 그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백일장의 시제, 〈앙모양관선생(仰慕梁灌先生)〉
이번 백일장의 시제는 ‘양관 선생을 우러러보며’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선생의 시문 대부분이 소실되어, 절구 3수와 율시 〈제일로당(題逸老堂)〉만이 전한다. 네 작품만으로도 그의 청백리 정신과 학문의 깊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선현의 작품을 재구성하는 것은 외람된 일이지만, 〈대한신운(大韓新韻)〉의 창안 원리를 설명하기 위함이므로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 원작 宇宙吾身付畀隆 내 몸의 융성함을 천지에 맡겼으니 塵埃豈合老英雄 속세의 먼지가 어찌 늙은 영웅에게 합당하겠는가! 文章早戒昌黎命 문장은 일찍이 창려의 명을 훈계로 삼았고 弓馬還期定遠功 활과 말로 다시 정원의 공을 기약했다네. 半世身名歸咋指 반평생의 신명은 돌아가 손가락 깨물었으나 暮年詩禮覺安躬 만년에 시와 예로써 몸이 편안함을 깨닫네. 名齋有意君知否 일로당 작명 뜻을 그대는 아는가? 退逸猶存事業豐 은퇴하니 오히려 사업은 더욱 풍성하다네. 〈대한신운〉의 구성 吾身隆盛付宇宙 내 몸의 융성함을 우주에 맡겼으니 俗塵豈合老英雄 속세의 먼지가 어찌 늙은 영웅에게 합당하겠는가! 文章早模韓愈才 문장은 일찍이 한유의 재능을 모범 삼았고 弓馬還期班超忠 활과 말로 다시 반초의 충성을 기약했다네. 半世身名歸咋指 반평생의 신명은 돌아가 손가락을 깨물었으나 晩年詩禮進安躬 만년에 시와 예로 나아가 몸 편안하다네. 名齋有意君知否 일로당 작명 뜻을 그대는 아는가? 隱居猶存修業豐 은퇴하니 오히려 수업이 더욱 풍성해지네. 제4구에서 功 대신 忠을 사용하여 짝수 구의 압운을 통일했다. 즉, ‘궁, 륭, 붕, 숭, 웅, 융, 중, 충, 풍’ 중에서 압운을 선택하고, 홀수 구의 끝 글자는 宙, 才, 指, 否처럼 압운한 발음이 나오지 않는 글자로 안배하면 된다. 〈대한신운〉은 평측과는 무관하므로 누구나 쉽게 익히고 즐길 수 있다. 대구 표현은 기존 방식과 같으며, 평측과 무관하므로 표현이 더욱 정밀해진다.
한시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 기존 율시는 평측 안배, 점대법(粘對法), 고평(孤平) 및 하삼평(下三平)·하삼측(下三仄) 금지 규칙 등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함련(頷聯)과 경련(頸聯)은 반드시 대구로 구성해야 하며, 두 연이 같은 문법적 구조를 반복하는 합장(合掌)을 피해야 한다. 즉, 함련과 경련은 각각 다른 문법 구성을 가져야 한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老人一快事〉에서 조선 시를 쓸 것을 주장했다. 老人一快事 노인의 제일 유쾌한 일 縱筆寫狂詞 붓을 휘둘러 미친 듯한 조선 시를 쓰는 일 競病不必拘 불필요한 규칙에 얽매일 필요 없고 推敲不必遲 퇴고에도 지체할 필요가 없네. 興到卽運意 흥이 나면 즉시 그 뜻을 옮기고 意到卽寫之 뜻이 떠오르면 바로 쓸 수 있네. 我是朝鮮人 나는 조선인이니 甘作朝鮮詩 기꺼이 조선 시를 짓겠노라! 우리 율시 창작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이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한시를 짓는 것이다. 백일장은 전통 율시와 〈대한신운〉을 바탕삼은 율시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실시하며, 장원(壯元) 후보작은 인공지능의 평가를 참조하여 더욱 공정하게 심사할 계획이다.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문학박사 성기옥 謹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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